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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를 바라보는 감성은 동서양이 차이가 깊다. 여러 가지를 짚어 볼 수 있겠지만 가장 큰 것은 해저 생물을 바라보는 눈이다. 동양권은 해산물을 식용하기 때문에 바닷속의 해산물에 대한 관심이 많고 또 포획하는 방법이 다양하다. 동양에 비하여 서양은 특정한 한두 종을 제외하고는 그저 바다 생물일 뿐이다. 아마도 해수 탓일 수도 있겠다. 수온이 높은 열대 바다의 생물은 크지만 맛이 떨어진다. 너무 커서 요리하기도 힘들고 해 놓아도 별 맛이 없다. 하지만 냉수대 생물들은 작지만 맛이 알차다. 일례로 해삼을 보면 열대 바다에 서식하는 해삼은 어른 팔 길이만 하다. 탄력이 없어 손으로 잡으면 축 늘어지며 흐물거린다. 하지만 동해안 해삼은 크기는 작지만 잡으면 온몸을 긴장시켜 탱탱해진다. 맛은 비교 자체가 안된다. 때문에 냉수대를 끼고 있는 나라에 수산물 요리가 발달한다. 해저의 수산물에 관심이 많았던 일본은 일찍이 머구리 산업을 일으켰다. 1840년 독일인 아우구스투수 시베가 수중에서 공기를 공급받을 수 있는 잠수 헬멧을 발명하여 산업용으로 활용하였다. 유럽에서의 잠수는 대형 선박 밑바닥 수리, 침몰선 인양 등에 쓰던 기술이었다. 반면에 일본은 산업용으로 쓰던 잠수장비를 들여와 수산물 채취에 활용했다. 머구리의 시초라고 할 수 있다. 어업에 쓰이지 않던 서구 잠수기 기술이 일본에 들어와 변형된 것이다. 이러한 기술 변형은 동아시아의 소비문화와 관련된다. 한국·중국·일본의 전복 등 해산물에 대한 선호는 전 세계적으로 각별하다. 현재도 전복, 성게, 해삼 등은 가격이 만만치 않다. 이러한 사정을 잘 아는 눈치 빠른 이들이 유럽에서 수중작업에 쓰이는 잠수장비를 들여온 것이다. 두꺼운 철제 헬멧과 잠수복을 입고 잠수 기술을 익힌 사람들은 바다에 들어가 해산물을 마구 포획했다. 이 모습은 주민들에게 산업화 시대의 무지막지한 파괴자처럼 보였다. 더구나 자원 남획이 얼마나 심했는지 바다가 황폐해졌다. 결국 어민들의 문제 제기에 잠수기 업자들은 일본에서 강제 퇴출되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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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머구리는 역대에 없는 조업방식이었다. 기껏해야 자맥질이 전부였을 터인데 머구리는 깊은 수심에서 오랜 시간을 조업할 수 있었다. 기술만 있으면 맨몸으로 큰돈을 벌 수 있는 블루오션이었다. 떼돈이 되었다. 바다에 익숙한 사람들이 주저없이 머구리의 길을 택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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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릉 오리바위 앞이 머구리 입문 현장이라는 이 모 씨는 20대에 대출을 내서 머구리 배를 운영하였다. 하지만 함께 일하는 기술자 머구리가 맘에 들지 않아 내친김에 자신이 기술을 배워 머구리가 되었다고 한다. 6,70년대는 미역바리가 최고 소득원으로, 강릉의 강문미역과 묵호 대진미역을 최고로 쳤다고 한다. 머구리의 미역 작업은 명절에 벌초하듯 한다는 것이 특징이다. 미역을 잘라 포대에 담아 위로 올리고 내려오는 포대에 미역을 담아 올리는 작업을 아침 새벽부터 오후 3, 4시까지 했다고 한다. 물론 작업하고 쉬러 올라와 음식을 먹기도 했다. 당시는 미역 한철 작업하면 1년 먹고 살 돈을 벌었다고 한다. 선주들은 머구리를 기술자라고 부른다. 머구리 작업선은 보통 선주, 머구리(기술자), 선원으로 구분하여 작업에 임한다. 선주는 배와 머구리들이 착용할 잠수복을 준비한 다음 적당한 기술자 머구리를 섭외하여 한배에 탄다. 선원은 4~5명 정도가 함께 하는데 이들은 머구리들의 생명선인 공기펌프, 천평기를 교대로 계속해서 밟아줘야 한다. 천평기는 머구리에게 공기를 공급하는 생명선이다. 머구리는 청동투구 무게만 15kg, 여기에다 쇳덩이 신발과 앞뒤에 매다는 추, 잠수복 무게를 더해 60kg이 훌쩍 넘는 장비를 착용하고 배 위에 있는 동료와 천평기를 믿고 바다로 들어간다. 바다로 들어가면 자신이 할 수 있는 것은 작업뿐이다. 스스로 수면으로 상승하는 것이 거의 불가능하다. 이들이 함께 조업하고 얻은 수입은 선주가 30%, 머구리가 30%, 그리고 선원들이 나머지 40%를 가지고 나누어 갖는 것이 상례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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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 머구리 배는 음력 2월부터 5월까지는 미역 작업을 했다. 가장 고되고 힘들지만 목돈이 생기는 작업이다. 그리고 5월 중순부터 8월까지는 우뭇가사리와 성게와 해삼을 잡았고 음력 9월부터 10월 중순까지 휴식을 가졌다. 이후에는 전복을 중심으로 해삼과 여러 해산물을 채취했다. 인간의 욕심은 스스로를 지키지 못한다. ‘조금만 더’ 하겠다는 마음에서 위험이 시작되기 마련이다. 머구리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병은 잠수병(시베리)이다. 잠수병은 몸속에 질소가 쌓이면서 생긴다. 초창기 머구리들은 질소 감압 등에 대해 무지했다. 감압하면서 물속에서 천천히 올라와야 잠수병의 원인인 혈액 속 질소를 없앨 수 있다는 지식이 없었다. 잠수병을 쉽게 설명하면 육상에서 마시는 공기가 바닷속 10m만 들어가면 절반으로 줄어든다. 즉 평지에서 10을 마셨으면 수심 10m에서는 1기압을 받아 절반인 5 정도로 압축된다는 의미이다. 20m를 들어가면 2.5가 되는데 이런 상태에서 혈액에 녹아 있다가 급상승할 경우 미세한 질소방울이 급격히 팽창하면서 생기는 병이 잠수병이다. 현재도 상승 중에 감압을 위해 잠시 멈추었다가 상승하기를 반복하는 등 감압을 위한 시간을 보내고, 철저히 작업시간도 지킨다. 하지만 오랜 작업으로 질소 등이 축적될 위험이 상존하여 잠수병은 언제 올지 모르는 시한폭탄이다. 때문에 잠수병이 오면 다시 같은 수심으로 내려간다. 그곳에서 감압 시간을 보내고 천천히 상승하면 체내의 질소를 제거할 수 있다고 믿고 있지만 쉽지 않다. 공기방울이 관절에 걸리는 경우가 대부분으로 엄청난 고통을 호소하고 관절도 상한다. 잠수병 경력자의 대다수가 고관절을 비롯한 관절 수술을 한다. 기압을 조절하여 치료하는 챔버가 있지만 최근의 일이다. 신기한 것은 잠수병 환자들은 바다에 들어가면 몸이 가벼워지고 아픈 곳이 없어진다는 점이다. 예전에는 어촌마을에 가면 머구리가 많았다. 보통 2~5명 정도가 작업을 했지만 많은 곳은 10명이 넘었다. 조업 구역에 제한이 없을 때는 동해안 일원 어디에서든 배를 세우고 작업을 했다. 하지만 이제는 점차 사라져가는 업종이 되어 머구리 작업은 보기 어렵다. 다큐독립영화로 유명한 진모영 감독이 지난 2017년 고성에서 머구리로 생계를 이어가는 탈북민의 새로운 삶에 대한 이야기를 다큐로 제작 발표하면서 덩달아 머구리에 대한 관심도 높아졌다. 횡성 노부부의 사랑을 〈님아, 그 강을 건너지마오〉라는 제목으로 제작해 주목을 받았던 감독이다. 당초 진감독은 여행 중에 읽은 잡지 안에서 수중작업 도중 잠수병으로 하반신이 마비된 머구리가 가족의 생계를 위해 다시 바다로 들어가기 위해 뱃전에 앉아있는 사진과 기사를 보았다. 그걸 보고 가족을 위해 목숨을 담보로 내놓은 가장의 이야기, 머구리에 대한 작품을 만들겠다고 마음을 굳혔다고 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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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영이 부력을 이용해 수면에 떠서 움직이고 이동하는 기술이라면 자맥질은 수면에서 바다속으로 들어가 유영하며 수중 세계를 즐기는 기술이다. 자맥질 중에 여유가 생기면 해산물이 보이고 채취할 수 있는 기술도 습득할 수 있다. 이처럼 자맥질은 인간과 바다가 자연의 질서를 거부하지 않으며 만나는 첫 번째 의식이다. 하지만 머구리는 부력을 거부하고 지켜야 할 가족을 위해 오늘도 바다속을 걷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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