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해는 한류가 지배하는 지역으로 찬바람이 불기 시작하면 동해안은 풍요로워진다. 동해안에서만 볼 수 있는 까나리, 심퉁이, 꼼치, 도루묵 등 각종 어종들이 줄지어 올라온다. 동해의 대표 어종이던 명태는 사라졌지만 까나리와 도루묵이 그 뒤를 잇고 있다.
  까나리를 두고 지역에서는 양미리라 부른다. 학명은 까나리인데 지역사람들에게는 양미리인 것이다. 동해안 생활 실태를 조사했던 대학교수가 어민들의 말을 그대로 믿고 ‘양미리’라고 보고서에 올렸다가 수정하느라 애를 먹었다는 이야기가 전할 만큼 지역에서는 까나리가 양미리인 것이 당연하고 자연스럽다. 양미리가 아니고 까나리라고 아무리 이야기해도 ‘말짱 도루묵’이다.
  매년 열리는 속초의 양미리와 도루묵 축제에서도 까나리라고 쓰지 않고 양미리라고 쓴다. 차라리 양미리로 고치는 것이 옳아 보이지만 학명으로 까나리와 양미리는 다른 녀석이다. 분명한 것은 동해안에는 까나리만 살고 서해안에는 까나리와 양미리 두 종이 모두 서식한다는 것이다. 다만 서해안의 녀석들은 크기가 작다. 그래서 까나리는 액젓을 만들고 양미리는 대부분 말리거나 볶아서 조리했지만 이제는 존재 자체에 대한 관심이 예전 같지 않다. 동해안처럼 구워 먹는 것은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다.
  서해안의 까나리나 양미리는 크기에서 절대 동해안의 양미리(까나리)를 따라가지 못한다. 서해안 까나리나 양미리는 미꾸라지 정도이고 동해안 까나리는 꽁치만 하다. 그래서 짚에 매달아 말린 후 숯불이나 연탄불에 구워 먹는다. 때문에 축제도 가능한 것이다. 동해안 까나리가 서해안 까나리보다 척추골 수가 더 많고, DNA에서도 약 7%의 매우 큰 차이를 보인다고 한다. 아주 옛날에는 같은 태생이었을지 모르지만 이젠 완전히 다른 어종인 셈이다.
  까나리는 냉수성 어종으로 수온이 18℃ 이상 올라가면 모래 속에 몸을 파묻고 여름잠을 자는 매우 흥미로운 생태를 가진 어종이다. 4월부터 동해안으로 동한난류가 올라오면 까나리는 여름잠에 빠진다. 더운물을 싫어하는 까나리에게 이 동한난류는 동해에서 서해로 이주하는 것을 어렵게 만드는 장벽 역할을 했을 것으로 보는 학자들도 있다.
  그 결과, 오랫동안 동해안과 서해안 까나리가 격리되어 만나지 못하게 되어 유전적으로도 큰 차이를 보이게 되었다는 것이다. 양미리와 까나리의 차이를 쉽게 파악할 수 있는 방법은 지느러미에 있다. 까나리는 등 전체에 긴 지느러미가 있고 양미리는 꼬리 부분에 화살 깃처럼 짧게 달려있다.
  까나리가 여름잠에서 깨어날 즈음 10월 중순이면 어민들은 슬슬 양미리(까나리) 잡이를 나선다. 예전에는 먼저 배에 돌을 잔뜩 싣는다. 그리고 어장으로 나아가 바다에 던진다. 돌이 바닥에 떨어져 충격을 주면 잠자던 녀석들이 깨어나 활동을 시작한다. 이때 어민들이 그물을 쳐서 잡는 것이다. 또는 바다에 미리 그물을 깔아놓고 위에서 돌을 던져 녀석들이 그물에 걸리도록 해서 잡았다. 요즘에는 위에서 초음파로 어장을 확인한 뒤 다이버들이 들어가 뛰어다니며 돌 대신 꿍꿍거려 양미리(까나리)를 깨운다.
  12월 찬바람이 강해지면 양미리(까나리)는 산란기를 맞는다. 엄청나게 큰 무리를 형성하여 몰려다니면서 산란과 방사를 하기 때문에 물이 뿌옇게 변할 정도인데 이때에는 세로로 그물을 쳐서 잡는다. 그물도 잘 쳐야지 위치를 잘못 잡으면 까나리들이 피해서 이동하는 영악스러움이 있다.

  속초 동명항에 양미리(까나리) 축제가 열리면 연탄불 앞에서 석쇠를 놓고 양미리를 굽는다. 살이 연하기 때문에 불이 세면 양미리가 숯이 된다. 예전에는 짚을 태우고 난 후에 잔불로 양미리를 구웠다. 전하는 말로는 ‘겨드랑이 온기로 굽는다’는 말이 전할 정도이다. 축제장에서는 상인들이 미리 오븐에 초벌구이를 하여 손님의 연탄이나 숯불 위에 올린다. 그러면 한두 번 뒤집은 뒤에 바로 먹어도 충분하다.
  양미리는 몸체가 둥글고 금방 익기 때문에 한입 감으로 좋다. 본래 내장이고 가시고 가리지 않고 대가리부터 통째로 먹는 생선인지라 한 움큼 깨물면 절반이 사라진다. 그리고 보기에는 차이가 없지만 막상 먹어 보면 암수의 맛 차이가 있다. 암컷과 수컷은 뱃속의 내용물부터 다르다. 암컷의 배에는 당연히 알이 가득 차 있고, 수컷의 배에는 정소 즉, 이리가 들어 있다. 부드러운 크림치즈 같다는 평을 듣는 이리 때문에 사람들은 수컷을 더 쳐주기도 한다. 수컷 뱃속의 이리는 열을 가하면 녹아내리는데 그 녹진하고 부드러우면서 짭조름한 맛이 크림치즈에 비길 만하다. 단백함 속에 드러내는 알의 고소함은 맛 극치이고, 녹아 흘러내릴 듯한 이리 맛은 바로 ‘카~ 한잔’을 부른다. 알도 맛있고 이리도 맛있다. 없어서 못 먹을 뿐이다.
  여기에 얼떨리우스 같은 녀석이 곁에 있는데 도루묵이다. 양미리에 비해 약간 늦게 어획되는 도루묵은 알이 일품이다. 양미리는 비교적 얕은 수심에 서식하지만 도루묵은 깊은 바다에 산다. 도루묵은 겨울에 산란을 위해 연안으로 몰려나온다. 알을 제외하면 먹을 것이 별로 없을 만큼 알이 크다. 한때는 도루묵알 전량이 일본으로 수출되고 살코기는 어묵으로 만들어졌다.
  요즘은 도루묵알을 접하기 쉽지 않은 세상이 되었지만 동해안에서 자란 40~60대들은 간식으로 도루묵알을 간식으로 먹고 다녔다. 학교 앞 문구점에서 도루묵알을 쪄서 팔 정도였다. 몇 해 전에는 도루묵이 동해안에 몰리면서 해안이 도루묵알로 뒤덮인 적도 있다.
  도룩묵은 알을 해초에 둥글게 말아 붙이고 수컷이 지키는 습성이 있다. 때문에 해초가 얕은 바다에 깔려있는 지역에서는 알을 지키다가 파도에 쓸려 나오는 도루묵을 맨손으로 잡았다. 하지만 이제는 해초를 수심 깊은 곳에 가야만 접할 수 있으니 손으로 잡는 것은 기억 속에 남아있는 일이 되었다.
  일부 사람들이 욕심을 내어 이즈음에 통발을 넣고 한꺼번에 잡아간다. 도루묵은 통발의 그물에 알을 붙이려고 들어간다. 도루묵이 많을 때는 통발을 건지지 못하고 버려지는 경우도 있어 도루묵의 떼죽음은 물론 환경까지 오염시켜 해경이 나서고 있지만 한계가 보인다.
  요즘은 도루묵이 축제에 등장하면서 맛의 신세계를 열고 있지만 사실 요리가 쉽지 않은 생선이다. 허균(許筠: 1569~1619)은 조선의 음식을 두루 맛을 본 후 미식 평을 『도문대작』에 남겼다. 여기에 은어(도루묵)에 대한 재미있는 이야기가 남아있다.
  은어가 다시 목어라 하여 환목어(還木魚), 즉 도로목이 되었다는 이야기이다. 허균이 맛에 대한 평가 없이 이야기만 올린 이유는 도루묵 맛은 못 보고 어물전을 바라보며 입맛만 다셨다는 증거이다. 비슷한 이야기가 전하는데 임진왜란 때 선조가 북쪽으로 피란길을 떠날 때 배가 고파 수라상에 올라온 생선을 맛있게 먹은 후 생선의 이름을 물었다. ‘묵’이라는 생선이라 하자 이렇게 맛있는 생선의 이름으로는 별로 생각에서 즉석에서 은어(銀魚)라는 이름을 하사하였다. 전쟁이 끝난 후 피란지에서 먹은 은어가 생각이 나서 다시 먹어 보니까 옛날에 먹던 그 맛이 아니었다. 실망한 선조는 ‘도루묵’이라 불러라 하여 ‘도루묵’이라는 이름이 생겼다고 한다.
  사실 양미리나 도루묵은 동해안에서 귀한 생선은 아니다. 많이 잡히고 흔하기 때문이다. 더욱이 양미리구이의 가장 큰 장점은 사실상 아무 준비도 필요 없다는 것. 연탄불 위에 석쇠를 얹고 양미리와 도루묵을 구울 때는 연탄불 위에 몇 마리를 얹은 뒤 굵은 소금 몇 알갱이를 툭툭 뿌려주면 준비 끝이다. 쉽게 타기 때문에 자주 뒤집어 주는 것이 잘 익히는 비법이다.
  속초에서 양미리 축제가 열린다는 소식을 듣고 차에 시동을 걸었다. 바닷가 찬바람에 옷깃을 세우고 꼭 맛을 보아야겠다. 그리고 여기 남은 잔여 원고에 그 맛을 새겨놓을 것이다.

  ‘맛있다~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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