굿을 하면 좋은 일이 생길까? 눈 앞에 펼쳐진 바다는 끝이 없다. 검푸른 수평선에 획을 긋고 지나는 어선 한척이 그리는 동선은 무모한 것일까 아니면 용감한 것일까? 낭만을 떠난 바다는 두렵다. 굿판을 앞에 두고 한 발자국 물러서면 한번은 스쳐 가던 생각이다.

 봄바람이 더위를 가져올 무렵이면 동해안 나릿가에는 신기와 호개등을 높이 달고 주민들과 무당들이 어울리는 굿 한판을 볼 기회가 온다. 풍어제라고 하는데 원래는 별신굿으로 일제 강점기에 들인 말이다.

 별신굿에서 '별(別)'의 어원을 놓고 말이 많다. '신을 특별히 모신다'라는 의미 외에도 마을 당신 외 별개의 신이라는 설, 여러 신들을 불러들였다가 돌려보내는 이별에서 유래되었다는 설, 지명에서 흔히 쓰이는 벌에서 유래되었다는 설, '밝다'라는 말에서 나왔다는 설 등이 있다. 별신이라는 하나의 단어가 이처럼 다양한 의미를 담을 수 있는 것은 별신굿이 특정 집단의 전유물이 아니고 지역 구성원의 염원을 담은 무속제의이고 마을공동체의 축제이기 때문이다.

 십리부동풍(十里不同風)이요, 백리부동속(百里不同俗)이라고 했다. 십리 밖 바람과 백리 밖 민속이 같지 않다는 뜻으로 풍속의 다양성을 의미한다. 하나의 바다를 앞에서 삶을 영위하지만 바램은 다르게 나타난다.
 강릉에서 동해를 만나 내륙과 다른 다양성을 접했다. 바닷가 내음이 익숙해질 무렵 지인은 ‘뉴스거리’를 빌미로 필자를 사천항 옆 백사장으로 이끌었다. 하얀 텐트 입구에는 긴 대나무 장대에 호개등이 길게 펄럭이고, 무녀의 사설과 사물 장단이 파도 소리에 섞여 밀려들었다.
 뱃기(배성주기)가 나란히 꽂혀 바람에 휘날리는 백사장 한편에서는 아낙들이 각종 음식을 한 상 차려놓고 무녀와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근심 찬 아낙의 얼굴은 무녀와의 교감으로 밝아졌다가 다시 우울해지고 또 가벼운 미소로 답하면서 깊은 한을 털어내고 있었다. 이어서 용동이를 탄 무녀가 대(신기)를 들고 목청껏 용왕의 뜻을 전달하느라 애를 썼다.
 남자들이 백사장에 들어서더니 갑자기 자신의 뱃기를 들고 바다로 뛰어들었다. 선주들은 파도를 뱃기에 담아내며 흔들고 또 휘두르며 바다, 용왕에게 다가섰다. 배의 이름이 적힌 기를 바다에 먼저 담그면 복이 온다는 속신 때문에 일제히 바다로 뛰어드는 모습이 장관을 이루었다. 무녀들이 휘날리는 뱃기 사이로 옮겨다니며 선주들을 축원하는 모습이 보였다.
 뱃기의 선명한 색채 속에 신대가 선명하게 눈에 들어왔다. 한 무녀가 굿에 사용했던 신대를 들고 바다를 향해 휘두르고, 백사장에 곧추섰는데 시간이 멈춘 듯 했다. 마치 수평선에 우뚝 선 선돌의 모습이었다. 일순에 침묵이 찾아왔고 수평선이 갈라졌다. 그후 바닷가에서 그 이상의 풍광을 본 적이 없다.
 민속연구에 뜻을 두고 뛰어다닐 때 삼척 정라진에서 본 풍어제는 사천 백사장에서 본 풍어제와 달랐다. 삼척항 입구에서 열린 정라진 풍어제는 서낭당과 상가를 오가면서 흥겨운 굿판이 이어졌다. 굿이 절정을 향할 무렵 굿당 앞에 어선이 정박하고 무당과 양중들이 배에 올랐다. 뱃전에는 이미 용떡이 상전에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용떡은 가래떡처럼 길게 뽑은 떡의 끝부분을 용의 머리처럼 만들고 콩으로 눈을 붙였다. 마치 뱀이 똬리를 틀고 있는 형상이다. 무녀와 어민 일행은 배를 몰아 바닷가로 나아갔고 굿판을 벌인 뒤 용떡을 바다에 던졌다. 온전히 용왕의 몫이다.
 용떡 중에는 다른 생김새를 가진것도 있다. 경상도 지역의 풍어제에서 본 용떡은 마치 진빵을 두 개 겹쳐 놓은 듯이 보였고 콩으로 눈을 장식해 귀여운 모습이었는데 강릉단오제 전통결혼식장 혼례상에 올랐던 용떡과 같은 모습이었다.


 최근에는 강릉 주문진에서 풍어제가 열렸다. 오랜만에 보는 풍어제라 카메라를 메고 전과정을 지켜보며 기록했다. 봉구미 정상에 마련된 서낭당의 주신은 정경세(1563~1633)이다. 호가 우복(愚伏)으로 광해군 시절 강릉부사를 역임했던 실존 인물이다. 주문진 진이서낭당과 관련한 설화가 전한다.
 위 이야기는 주문진풍어제의 기원론이다. 정우복을 모신 우복사(愚伏祠)는 연곡면 퇴곡리에 있었는데 구한말에 이런저런 이유로 철폐되자 주문진 주민들이 진이서낭당에 정우복 내외의 화상을 진이서낭당으로 모셔왔다는 것. 그 후로 매년 서낭제를 올린다는 것이 주민들의 설명이다.
 어민들은 그 이야기를 서낭당 탱화에 담아 놓았다. 정우복이 가운데 자리하고 양쪽으로 여신들이 있는데 정우복과 오른쪽 여신과 사이에 동자가 있다. 따라서 오른쪽이 진이서낭으로 짐작된다. 왼쪽 여신을 바다쪽에 선 이유로 용왕신으로 보고 있지만 우복사에서 이전할 때 ‘정우복 내외’의 화상을 옮겨왔다는 증언으로 미루어 부인일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풍어제에 가장 어울리는 굿은 용왕굿일 것이다. 바다가 내려다보이는 서낭당 동쪽에서 물동이를 타고 공수하여 신의 뜻을 전하며 절정을 향한다. 부두 한편에 젯상을 차려놓고 춤추고 노래하며 용왕굿을 마무리한다. 이런저런 사정으로 용떡을 띄우지 못하면 제물로 쓴 떡과 음식을 선주들에게 바리바리 싸주면서 배를 타고 조업에 나설 때 싸준 제물을 바다에 던지며 복을 빌라고 일러준다. 민속이 가진 탄력성이다.
 굿당이 차려진 서낭당 천장에는 ‘선계용선’이 매달려 있다. 굿의 끝부분, 송신을 위해 마련된 신을 보내는 수단 중 하나이다. 무녀들과 주민들은 허공에 매달린 오색 찬란한 배에 하얀 길베를 길게 묶어 놓고 ‘당겼다 놓았다’를 반복하면서 신에게 기원을 담은 노래도 부르고 기도를 올리며 신을 마중한다.
 풍어제에 참여한 무당, 어촌계원, 관광객 등등에게 제공할 음식을 준비하는 과방에서는 어제 경매된 밍크고래 가격을 놓고 수군수군한다. 어촌계원이 미리 쳐 놓은 그물에 고래 한 마리가 걸려 죽었고, 그 고래가 경매에서 고액에 팔렸다는 것이 화두이다. 포유류인 고래는 법적으로 잡을 순 없고 그물에 걸려 죽으면 그물 임자 차지다. 즉, 익사하면 경찰이 검시해 보고 타살 흔적이 없으면 그물 주인에게 돌려준다. 고래는 몇천만원이 오고가는 고가로 ‘로또’ 당첨에 해당한다. 이쯤되면 계원은 풍어제에 감사하며 어촌계에 얼마간의 돈을 내놓거나 크게 잔치를 벌이기도 한다.
 바다에 삶의 터전을 둔 사람들은 세찬 파도와 싸우며 지속적인 삶의 의미를 얻어야 했다. 때문에 스스로 지탱할 수 있는 어떤 힘의 근원이어야 했다. 바다와 화합하고 축복을 받아 다시 바다에 나갈 힘을 얻어야 했다.
 어민들은 풍어제를 지내며 용왕을 모시지만 두려워하지 않는다. 용왕을 달래며 공존을 위한 손을 내밀 뿐이다. 삶을 위한 선택이다.